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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t is present #엮이는 인연-1

번호 1625
카벙클 | 비술사 | Lv.80
20-01-06 00:44 조회 9953

이제 2장입니다.



에오르제아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라노시아 지방.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해양 도시 림사 로민사에는 안개빛 마을이라는 모험가들을 위한 마을이 있다.


안개빛 마을의 남서쪽, 언덕길에 올라서면 보이는 조금 외진 곳 절벽 아래쪽에 위치한 대형 주택. 울타리 안쪽으로 보이는 마당에는 아름다운 분수와 벚나무, 그리고 솜사탕과 같이 둥실둥실한 드라바니아 관상목과 작은 개울도 자리하고 있었다.


아름답지만 드나드는 사람이 없어 수수께끼로 가득한 저택의 문이 지금 살짝 열렸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인 것은 새하얀 손과 작은 발이었다. 작은 발은 햇빛으로 그어진 금을 살며시 밟았다.


...”


그리고 다시 들어갔다.


으음.”


그리고 다시 머뭇머뭇 앞으로 나오고.


아우.”


다시 재빠르게 그림자 안으로 사라졌다.


아아. 못하겠다.”


딸깍. 집 밖으로 이어진 문을 닫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은 그녀는 문에 머리를 기댄 채 눈 같이 빛나는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헝클어뜨렸다.


그녀가 생각해도 좀 이상하지만, 현재 이나라 자칭한 그녀는 지금 매우 진지하게 집 밖으로 나가는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막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되는 간단한 일.

그렇지만 그녀를 막는 사람이나 마법이 없어도 집 밖으로 나서려 하면 단단히 굳어버리는 몸과 거칠어지려 하는 호흡에 그 쉬운 일을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다.


그렇게 벌써, 잭 일행과 헤어진 지 3일이란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 이렇게 겁이 많았었나?”


결국, 그날도 마당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한 그녀는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친 채 책 한 권을 펼쳐두고 한숨을 쉬었다.


종일 집 밖으로 나서는 연습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 나름대로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하나씩 준비해나가고 있었다. 지금 펼쳐 놓은 서재에서 찾아낸 마법에 관련된 책도 그중 하나였다.


한동안 책을 읽어나가던 그녀는 옆에 놓인 마도서 미메시스 룩스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아 그녀에게만 보이는 반투명한 창에 집중했다.


마치 보지 않아도 손이 저절로 가듯이 그녀는 생각만으로 단축바에 보이는 소환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마도서의 날개가 펼쳐지며 허공에 녹색의 빛과 함께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녀는 눈을 뜨고 연녹색으로 빛나는 마법진을 열심히 관찰했다. 5초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마법진이 사라지며 에메랄드 빛의 새의 형태를 한 소환수 가루다 에기가 소환되었다.


그녀는 바람을 휘감으며 둥둥 떠 있는 카루다 에기를 관찰하며 종이에 열심히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마법에 관련한 책을 보고 다시 종이에 기록하기를 반복했다.


한동안 그렇게 연구하던 그녀는 머리에 김이 나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뒤로 푹 젖혔다.


끙끙거리며 그녀가 하는 것은 소환사의 마법에 관한 연구였다. 다행히 집 안에는 마법에 관한 책이 있었고 분명 처음 보는 글자도 읽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원래 있던 세계에서는 접해보지 못했던 마법을 책 한 권과 샤이나가 남긴 마도서만을 의지해 공부하는 것은 지혜열이 일어날 만큼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정말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기에 그녀는 이 세계에 온 시간의 대부분을 이곳에 투자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소환사의 마법 중 그녀의 몸을 지킬 수 있는 공격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집안 물건을 대상으로 사용해 다 부술 수는 없었으니까.


머리 좀 식혀야지.”


오오.” “나나모니랏.”


그녀는 꼬마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창가로 다가가 서늘한 창문에 이마를 댔다. 호오 하며 시원함에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입김에 창문이 부옇게 물들었다.


그녀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노을빛에 젖은 마당을 내다보았다. 정확히는 한쪽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하나의 나무 인형을 보고 있었다. 훈련용 나무 인형. 플레이어들이 딜 싸이클을 연습하기 위한 무한의 내구도를 가진 샌드백이었다.


이것이 그녀가 밖으로 나가는 시도를 했던 이유였다. 그녀는 훈련용 나무 인형을 보다 마당 한구석에서 뽀르르 나타나는 검은 물체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오늘도 또 왔네.”


검은 물체의 정체는 작은 고양이었다. 넓은 마당을 활기차게 뛰어다니다가 이것저것 건드리며 나비를 발견하자 폴짝폴짝 뛰는 모습은 호기심 많은 새끼 고양이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슬쩍 눈길을 돌려 마당 한쪽에 피어있는 벚나무 아래를 보았다. 벚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잘 보이지 않는 그곳에 느긋하게 누워있는 검은 털의 동물.


그녀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어느새 자취를 감춰버리기에 전체적인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언제나 새끼 고양이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날이 어둑해져 거대한 솜사탕과 같은 나뭇잎을 가진 드라바니아 관상목이 연분홍빛으로 빛나기 시작할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는 이윽고 몸을 돌려 책을 챙기고 샤이나의 방으로 향했다.


늘 그렇듯이 꼬마 친구들과 함께 목욕한 후 침대에 누운 그녀는 다짐했다.


내일은 반드시!’


그녀는 내일 해야할 일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가 에오르제아에 온지 5일차의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

 

밝은 아침 햇살이 창을 통해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과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귀를 간질이자 뾰족 솟은 귀가 쫑긋쫑긋 움직였다.


이윽고 쑥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민 귀의 주인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다가 쭉 기지개를 폈다. 평소보다 꽤 늦은 아침이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늘은 휴일이니까.


레키는 꾸벅꾸벅 두 번째 잠이 들려하던 차에 고개를 휘휘 저으며 일어나 세면실로 향했다. 가벼운 캐미숄과 반바지 차림의 레키는 거울 앞에서 어푸어푸 고양이 세수를 한 뒤 어느 정도 잠이 깨자 정신을 차리며 본격적으로 세안과 화장을 시작했다.


레키가 외출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을 때는 벌써 해가 하늘 높이 솟아있었다.

간단한 아침 대용으로 작은 배낭에 과일을 집어넣고 등에 활을 멘 레키는 한들한들 꼬리를 흔들며 집을 나섰다.


레키가 속해있는 잭의 파티는 오늘 휴일이었다. 이전 베히모스와 전투를 벌인 이후 피로도 풀고 망가진 장비도 수리를 맡겨 일행은 각자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있었다.


레키 역시 오랜만의 휴일을 만끽하며 안개빛 마을을 산책 하고 있었다.


내키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어느 집 담벽에 다가가고 있었다. 울타리 너머로는 익숙한 기합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레키는 씨익 웃으며 열려있는 문을 놔두고 울타리를 휙 뛰어넘으며 말했다.


야호~”


“...그래 안녕. 그런데 문 있잖아, .”


레키는 울타리에 걸터 앉은 채 늘씬한 다리를 꼬며 꼬리와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인사 했다.


울타리 너머 마당은 혼동된 공간이었다. 한눈에 봐도 흔히 볼 수 없는 조경물들과 고대 유물들이 널려있었으나, 배치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늘어놓는 바람에 매우 혼란스러운 마당이었다.


그리고 마당의 중앙. 뻥 뚫린 공간에서는 한참 운동을 하고 있는 잭이 있었다.

웃통을 벗은 땀으로 젖은 상체는 열기가 가득했고 등에는 커다란 선판이 묶여 있었다. 그 상태로 팔굽혀 펴기를 하고 있던 잭은 숨을 내쉬며 인사를 받았다.


이게 빠르다 뭐? 마당 정리 좀 하라니까.”


. 그건 알겠다만. 어쩐지 정리를 하면 할수록 더 복잡해져서 말이지.”


레키는 킥킥 웃으며 그대로 팔굽혀 펴기를 계속하는 잭에게 배낭에서 과일을 꺼내 던졌다. 빠르게 날아드는 사과를 한 팔로만 몸을 지탱하며 다른 팔로 받아낸 잭은 잠깐 고민하다 고마워, 라고 말하며 사과를 베어 물었다.


. 오늘 뭐할 거야?”


잭은 어차피 슬슬 운돌을 마무리 지으려 했기에 훌쩍 뛰어 몸을 바로 세운 뒤 흩어진 도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오전에는 도끼술사 길드에 들렸다 모르도나에 가서.”


모처럼 휴일인데 심심해! 어디 놀러가자~”


레키에게 말이 탁 끊긴 잭은 어이 없는 표정으로 레키를 바라봤지만 웃는 얼굴에 뭐라 하지도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어디 가고 싶은데?”


그건 잭이 결정해 줘야지? 멋진 곳 부탁해~!”


어이어이. 아무 계획이 없던 거냐.”


레키는 철없는 누이동생을 보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잭을 보고는 볼을 불퉁거리며 발을 탁탁 굴렀다.


그 모습을 본 잭이 보란 듯이 양 손을 어깨 높이까지 들어 올리며 이런이런,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심통이 난 레키는 배낭에서 과일을 하나 더 꺼내들어 꽤 힘껏 잭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물론 잭은 가볍게 과일을 받아냈고, 레키를 보며 웃으며 사과했다.


한동안 실없는 장난과 대화를 한 후, 레키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잭에게 인사를 하며 다시 안개빛 마을의 거리를 거닐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따라 조용한 안개빛 마을의 모습에 텔레포를 실행했다.

목적지는 림사 로민사, 간단한 식사와 쇼핑이라도 해볼까. 라는 것이 레키의 계획이었다.

 

*

 

심심해.”


림사 로민사의 비스마르크 식당에서 오늘의 점심 특선 메뉴를 먹고. 시장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쇼핑을 했지만.


심심해~”


마주친 모험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에테라이트 광장에서 즉석 공연도 하며 이곳 저곳을 쏘아다녔지만.


~ ~ ~~!”


레키는 심심했다.


차라리 잭이나 따라다닐걸 그랬어.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


림사 로민사의 모험가 길드 겸 주점인 물에 빠진 돌고래주점의 주인이자 길드마스터인 바데론은 난감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직원의 눈빛에 못이겨 애써 외면하려 했던 현실과 마주했다.


이봐, 레키. 여기서 심심하다 말해봤자 해결할 수 없는 거 너도 알잖아. 우리 불쌍한 직원 그만 괴롭혀.”


레키는 그런 바데론의 말에 이미 비어있는 음료수 잔을 탁탁치며 투덜거렸다.


그치만 잭도 리리아도 에단도, 전부 일이있다면서 나랑 안 놀아주는 걸!”


녹티스는 안 물어 봤나?”


녹티스와 같이 있어도 하나도 재미있지 않다구!”


우냥우냥 울부짖는 레키는 민폐이긴 해도 거부할 수 없는 귀여움을 물씬물씬 풍기고 있었다.

바데론은 그런 레키를 위로하며 벌써 세 번째인 서비스로 음료수를 한잔 더 가져다주는 여직원의 모습을 보며 머리를 굴렸다.


어디보자. 레키의 관심분야는 노래, , 아름다운 것, , 동물아하.’


바데론은 잠시만 기다려 보라 말한 뒤 의뢰 장부를 뒤적였다.


그래, 네가 관심 있어 할 만한 의뢰가 있었는데 말이지. 여기 있군.”


. 레키의 눈앞에 길드 의뢰서 한 장이 내밀어졌다.


의뢰? 그렇지만 지금은 휴식기간인데? 나 아직 장비 못 찾아왔어.”


큰 전투가 필요한 의뢰는 아니라 탐색 의뢰나 괜찮을 거다. 4일 전이었나? 입항해오던 무역선 한 척이 원인 불명의 사고로 크게 부서진 적이 있었지. 그 때문에 노란 셔츠도 구조작업을 벌이느라 바빴어. 그런데 그 무역선 주인이 의뢰를 하나 신청하더군.”


무슨 의뢰인데?”


레키는 새침한 척, 흥미 없는 척, 하고 있었지만 바데론은 그녀의 귀가 쫑긋거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반쯤은 넘어왔다고 확신한 바데론의 혀는 더욱 매끄럽게 움직였다.


무역선 안에는 희귀한 동물이 실려 있었다더군. 하지만 그 사고 때문에 그만 탈출해버렸다는 거야. 그래서 그 희귀한 동물을 찾아서 다시 붙잡아 달라는 의뢰였다.”


희귀한 동물?”


쫑긋거리는 귀 뿐만이 아니라 반짝거리는 눈도 확인한 바데론은 거의 넘어왔다고 확신했다.


말을 들어보니 밤하늘과 같이 검은 털을 가진 여우라는 동물이라고 했다. 에오르제아에서는 드물고 먼 동방에서 서식하는 동물인 모양이야. 매우 아름다워서 어딘가 귀족님에게 진상하려고 비싼 값을 주고 사왔다지...?”


바데론 씨. 이 의뢰 받을게!”


바데론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의뢰서를 레키에게 주었다. 레키는 의뢰서를 읽어보더니 아랫부분에 의뢰를 받는 모험가의 서명을 적는 칸에 서명을 하기 시작했다.


서명을 하던 도중 멈칫, 하더니 악동같은 미소를 지은 레키는 이윽고 서명을 마치고 바데론과 직원에게 인사를 하며 재빠르게 뛰어나갔다.


드디어 귀찮을 짐이 떠나가셨군! 그럼어이쿠.”


팔짱을 낀 채로 시원하게 웃은 바데론의 눈에 들어온 것은 레키가 앉아 있던 바에 놓인 다수의 빈 음료수 잔과 100길 동전 한 닢이었다.

끄응. 이마를 짚은 바데론을 보며 난처해하며 웃은 여직원은 재빨리 빈 잔을 치우기 시작했다.


사죄하는 여직원에게 괜찮다며 레키가 주고간 의뢰서를 확인한 바데론은 서명란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냐. 네 파티이니 네가 책임을 져야지 잭.”


레키의 악동 같은 웃음의 비밀을 알게 된 바데론은 크크 웃으며 의뢰서를 벽에 걸었다.


벽에 걸린 의뢰서의 하단에는 멋들어진 글씨로 두 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나는 레키 발렌타인 이라는 이름.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

 

“-내 이름을 적었다고!?”


맞아~ 어차피 잭 이후에 이미 공략했던 던전을 찾아가거나, 알라그 문명의 고대 석판을 찾거나, 곤란한 사람 찾으며 돌아다닐 거잖아? 여기 있어! 곤란한 사람!”


잭은 차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얼굴을 찌뿌렸다. 레키는 헤실헤실 웃으며 잭에게 아양을 떨며 부탁했다.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라~ 생각보다 예상 지역이 넓어서 힘들 것 같단 말이야.”


그러면 애초부터 나에게 먼저 말을 하고 적으면 되잖아!?”


하지만 잭은 도와줄 거잖아? 내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레키의 신뢰가 가득한 말에 잭은 얼굴을 손으로 덮으며 애꿎은 하늘만 바라보았다. 때문에 레키의 소악마와 같은 웃음과 살랑거리는 꼬리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디부터 찾아야 하는데?”


여기!”


여기?”


레키의 말에 잭이 이상한 듯 되물었다.


여기, 안개빛 마을부터!”


안개빛 마을. 라노시아 지역의 동쪽 해안을 따라 지어진 모험가들을 위한 마을이며, 꽤나 넓은 마을이다.


눈에 잡힐 듯 보이는 고생길에 잭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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