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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 비극

번호 1596
톤베리 | 도끼술사 | Lv.70
19-11-17 11:54 조회 8701


​ㄱ 





한 부인이 실종된 남편을 찾아달라며 노란셔츠를 찾아왔어.

그 남편은 잃어버린 반지를 찾으러 나갔다가 사라진 모양이야.

부인은 밤이 너무 늦었다며 말렸지만 남편은 달빛이 있으니 괜찮다며 충고를 듣지 않았다더군.

필사적으로 수색했지만 결국 남편은 찾지 못했어.

그 남자가 사라진 곳 주변에서 발견된 건 통통하게 살이 오른 커다란 개구리 한 마리뿐이었다나…



"남편을 찾아주세요! 제발.."

비통한 여성의 흐느낌이 산호탑의 내부에서 새어나왔다. 맡았던 임무의 보고를 위해 마침 그 자리에 도착했던 모험가는 비명에 가까운 호소에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춰섰다. 울음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나이든 한 여성이 보였다. 머리를 정리할 정신도 없었는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그대로 둔 채, 그녀는 난처해보이는 노란셔츠 단원 하나를 붙잡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도 서러운지 연신 눈물을 닦으면서도 마지막 동앗줄이라도 된 것 마냥 옷깃을 꼭 붙잡은 손은 얼마나 힘을 줬는지 하얗게 질려있었다.

"물론 저희도 그러고 싶지만, 부인.."

"그렇다면 찾아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쩔쩔매는 단원의 폼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난처한 의뢰인 모양이다. 문득 호기심이 동한 그는 그들에게 시선을 떼지 않으며 걸음을 옮겼다. 팔짱을 낀 채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A가 그제야 모험가를 발견하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왔나? 기다리고 있었네."

"무슨일이지?"

"그게 말도 마. 밤새 사람 한명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네."

마침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했다는 듯, A는 재빠르게 모험가에게 간밤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오늘, 채 동이 트기도 전. 어스름한 새벽녘부터 저 부인이 산호탑에 찾아왔다네. 어제 저녁부터 실종된 남편을 찾아달라는 의뢰였어. 대개 보통의 경우, 다 큰 성인이 하루쯤 안보인다고 우리가 출동하진 않았겠지만 저 부부는 우리 림사로민사에서도 꽤나 정답기로 유명했었거든. 그런 이가 한밤중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건 필시 무슨 문제가 생겼다 싶어서 단원들을 내보내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네. 그런데.."

A는 여전히 단원 중 한명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부인을 안쓰러이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찾지 못했어. 무려 절반이 넘는 인원이 투입되어 정오가 지나가는 이 시간까지 뒤졌는데도 말이지."

"단순히 길을 잃었거나 실족으로 움직이지 못한 것이 아니로군."

"그래. 우리는 야만족에 의한 납치나 살해 후 시신을 유기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네."

야만족이라. 모험가는 최근 흉폭해진 사하긴 쪽의 동향을 생각해 냈지만, 그들이 이곳까지 오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야만족이라기엔 뭔가 석연찮은데.. 다른 수상한 점은 없었고?"

"그런게 있었다면 진작 조사했지 않았겠나. 어젯밤은 특히 만월이어서 밤이 훤했으니."

구름 한점 없어 유독 밝았던 어젯밤의 풍경을 떠올리며 모험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겠군. 흔적이 남은 것이 없다면 찾기도 어려울 터. 죽었다면 시신이라도 찾기를 바랄 수 밖에. 모험을 다니다보면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보게된다지만 괜시리 마음이 쓰여 여전히 넋을 놓고있는 여성을 흘깃 바라보았다.

"..저 때문에.."

작게 속삭이듯 달싹인 입모양을 보게 된 것은 짧은 찰나였지만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모험가는 손을 들어 주변 소란을 잠재우곤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제가 반지만...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그이가 나갈 일도 없었을텐데.."

"부인.."

양 손에 얼굴을 묻고 비탄에 잠긴 목소리로 여자는 흐느꼈다. 그 앞에 서있던 노란셔츠 단원은 어쩔줄 몰라하며 그녀를 달래려 애썼으나 그닥 효과는 없는 듯 했다.

"아아..어째서 저는. 그이를 말리지 못했을까요. 조금 더 강하게 말릴걸.. 보름이라..달이 밝다고. 남편은 괜찮다며 웃으며 나갔어요. 왔던길을 되짚으며 한번 찾아보고 오겠다며 나간 그이가...어째서. 어째서.. 그까짓 결혼반지가 뭐라고.."

온 몸의 수분을 다 빼낼 기세로 울던 여자는 결국 모든 기력이 다했는지 그 작았던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휘청였다. 옆에서 노란셔츠 단원 몇이 부축하며 그녀를 근처의 의자로 이끌고 가서 휴식을 도왔다. 덕분에 여자의 목소리에 집중하느라 숨죽이던 내부가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 틈을 타 A가 슬쩍 말을 덧붙였다.

"저 부부, 아까 유명하다고 했던 이유가 그 결혼반지라네. 그 까다롭다는 울다하 보석공예사들한테 사사받은 남자가 그 실종된 남편이었거든. 반지를 남편이 직접 만들었는데, 뱃고물광장에서 그 반지와 함께 청혼했었지. 벌써 십년이 넘은 이야기네만 호사가들에겐 꽤나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일세."

"소중한 추억이 담긴 반지라.."

"사실 잃어버린 반지보다도 반지를 잃어버리고 어쩔줄 몰라하던 아내의 모습 때문에 더욱 찾고싶었던 게 아닐까. 그만큼 다정한 사람이었네. 이렇게 갑작스럽게 실종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만큼."

A는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말 끝을 흐리며 초조하게 머리를 한번 쓸어올렸다. 어지간히 그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만약 그의 사건이 단순히 사람이 사라진 문제가 아니라 인신매매단이나 야만족의 소행이라면 림사로민사 전체가 들썩일 일이었다.

"조사해 볼 필요성은 있겠군."

알려지지 않은 추가 실종자는 없는지 찾아보라는 충고와 함께 모험가는 이전 임무에 대한 보고서를 A에게 던지듯 떠넘기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이, 진짜 찾아볼 생각이야?"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알아낸 게 있다면 링크펄로 연락하지."

검지와 엄지를 둥글게 모아 휘파람을 불자 초코보 축사에서 목을 축이던 초코보 한 마리가 번쩍 고개를 들어올렸다. 누가 말릴 틈도 없이 훌쩍 초코보에 올라탄 모험가는 그 길로 빠르게 모라비 만 방향쪽으로 사라졌다.



*



노란셔츠 단원들이 총 동원되어 찾았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었던 듯, 지나가는 곳곳에 특유의 쨍한 노란 옷자락들이 여기저기에서 펄럭였다. 그들과 함께 주변을 한바퀴 돌았으나 결국 하늘이 붉게 물들때까지 소득은 없었다. 어두워지면 수색작업이 더 어려워진다. 그 전에 혹시라도 눈에 띄지 않은 곳이 있는지 주의깊게 살피며 발걸음을 옮기던 그 때였다.

타닥 탁 탁

큰 소리는 아니었다. 흙더미가 무너지며 작은 자갈들이 서로 부딪혀 나는 소리 특유의 거친 속삭임이 모험가를 붙잡았다.

그의 바로 뒤에서.

"..어떻게 생각해, 파트너?"

"꾸에엑!"

오랫동안 모험을 함께 해온 버디는 그 주인만큼이나 위험에 민감했다. 다급한 울음소리와 함께 모험가는 초코보의 고삐를 있는 힘껏 끌어당겼다. 그들이 서 있던 바로 그자리에 정체모를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으나 조금 늦은 모양이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물체가 제 파트너를 휘감기 전에 모험가는 메고있던 도끼를 휘둘렀다. 반동으로 타고있던 초코보에서 떨어지긴 했으나 그들을 위협한 '그것' 또한 더이상 섣불리 다가오진 못하는 듯 했다.

어둑어둑해진 모라비 만의 파도에 둥그런 달이 하얗게 빛났다. 깎아지른듯한 해안절벽의 어두운 그림자가 걷히며 서서히 몸체를 드러냈다. 그들을 위협한 거대한 혓바닥에서 끈적한 침이 흘러내리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우둘투둘한 가죽, 그리고 어둠속에서도 희번득거리는 눈알. 맙소사, 모험가가 탄식했다. '그것'은 거대한 개구리였다.

그 거대한 몸집이 하룻동안 들키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해주듯 그것이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흙더미가 우수수 쏟아졌다. 모험가는 아까 지나칠 때 저 덩치만한 바윗덩이 하나를 본 듯한 기억을 떠올리곤 이를 악물었다.

"모험가님, 무슨일...으악!"

"오지마!"

아까 같이 현장을 수색하던 노란셔츠 하나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에게 다가오다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저..저.. 벌벌 떨리는 손으로 거대한 개구리를 손가락질 하며 두려움에 휩싸인 노란셔츠에게 아까 그들에게 날아온 것 마냥 끈적이는 혀가 감겨들어왔다.

"사,살려주세요!"

"어딜!"

쇄도하는 혓바닥을 향해 도끼를 내려찍은 모험가는 순간 느껴지는 묵직한 고통에 흠칫했다. 생물체가 아니라 마치 강철을 내려친 것 마냥 양 손이 떨려오는 것에 이를 악물고는 그대로 원을 그리며 밖으로 쳐냈다. 베어나간 것이 아니라지만 꽤나 타격은 들어간 것인지 개구리는 재빨리 혀를 회수하며 펄펄 뛰었다. 먹잇감을 두번이나 놓친 것이 분한지 제자리에서 한번 펄쩍 뛰어오른 개구리의 움직임에 진동음이 파동처럼 퍼져나갔다. 모험가는 휘파람으로 재빠르게 버디를 불러 여전히 제정신을 못차리는 노란셔츠 단원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안장에 내던졌다.

"실종자 명단에 당신도 올라가고 싶지 않으면 꽉 붙잡고 있으세요. 모라비 조선소까지 멀지않으니 거기까지 달려요."

"모,모험가님은...!"

"부탁한다, 파트너. 달려!"

"꾸에엑!!"

힘차게 울부짖은 초코보가 있는힘껏 달려나갔다. 동시에 모험가는 몸을 날려 거대한 개구리의 머리에 도끼를 내려찍었다. 정확하게는 내려찍으려고 했으나 거대한 공기 파동포에 다시금 밀려나 지면에 다시 안착했다. 꽤나 재빠른 일격이었으나 통하지 않았다는 것에 유감은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모험가는 다시금 도끼를 고쳐쥐었다. 일반적인 마물이라면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울 수 있다 자신했던 모험가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

"꾸엑! 꾸에엑!!"

모라비 조선소에 도착하자마자 링크펄을 통해 노란셔츠의 지원을 요청하고 부랴부랴 인원을 충원했다. 기다리는 그 몇초의 시간이 아까운 듯 모험가님의 초코보는 연신 바닥을 긁어대며 소리를 질러 그를 재촉했다. 보통의 초코보보다 덩치도 크고 부리부리한 눈매에 잔뜩 주눅이 든 단원이 허둥지둥 어쩔줄을 몰라하던 그때, 본대의 지원이 에테라이트를 통해 도착했다. 그리고 그 무리의 가장 앞에는 검은 셔츠의 남성이 서있었다. 그를 알아본 단원의 얼굴빛이 환하게 폈다.

"레이너 님!"

노란셔츠의 사령관, 레이너 한스레드가 직접 지원을 이끌고 온 것에 감격한 단원은 머리를 바닥에 박을기세로 허리를 숙였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빠르게 손을 내저어 인사를 물린 레이너가 상황을 물었다.

"모험가는?"

"마물과 대치중이셨습니다. 지원을 위해 저를 보내려 자리에 남으셨어요."

"꾸엑!"

무슨 잡담이 그렇게 많냐는 듯 모험가의 버디가 양 날개를 퍼덕이며 재촉했다. 레이너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노란셔츠를 이끌고 마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물론 그 앞에는 있는 힘껏 주인을 향해 달려가는 모험가의 버디가 있었다.

"여어. 이제오나?"

"꾸엑!"

모험가는 달려오는 파트너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어주며 잘했다고 칭찬했다. 레이너는 주변을 경계했으나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다만 주변 곳곳에 패인 모래들과 상처투성이인 모험가만이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었다.

"무사해서 다행이군. 마물은 어떻게 됐나?"

"사라졌습니다. 똑똑한 녀석이라 자신이 저를 잡아먹지 못할 것을 알자 몸을 감추더군요. 저도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더이상 쫓지는 않았습니다. 딱딱한 피부는 마치 강철과도 같았고, 덩치도 큰 녀석이 빠르기도 빠르더군요. 공기를 이용한 파동공격도 가능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으음. 그정도의 녀석이란 말이지."

"그리고...아마 알려진 것 외에 추가적인 실종자가 있을겁니다. 그 덩치와 공격습성을 볼 때, 한 두번 사람을 습격한 것이 아닌듯 했습니다. 저지 라노시아 일대에 주의하라고 전달 부탁드립니다."

모험가는 보고를 마치곤 훌쩍 제 파트너의 등 위로 올라탔다.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닌 듯 살짝 찡그린 표정의 모험가가 레이너를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건넸다.

"건네주세요. 그럼 저는 이만."

레이너는 자신에게 건네진 물건을 받아들었다. 본 적 있는 물건이었다. 십년도 더 지난 과거에 현장에 있었던 레이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주인잃은 반지가 별빛에 반사되어 흐리게 빛났다.

개굴개로스 完





이전에 블로그에서 올렸던 글인데,

이제 게임도 접고 블로그 개편하다보니 글이 보이네요.

읽는동안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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